신경호의 부르키나 파소 방문기 3편
- 굿파머스
- 2020년 3월 12일
- 4분 분량

저자 신경호 감사
보보로 향하는 길
4일 아침 호텔에서 오믈렛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하고 7시경 레오를 출발하였다. 갑자기 쏟아진 빗속에 와가두구에 도착하니 11시였다.
와가두구에서 KCOC의 이지영 대리와 경희대의 김운호 교수 두 분과 합류하였다. 두 분은 이번 우리 활동과 EWB에 대해 감사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두 분은 감사라기 보다는 우리를 도와주고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 같았다. 먼저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되고 있는 것은 더욱 잘 되도록 격려하고 다른 곳에서도 공유할 수 있도록 권유하며, 잘못되고 있거나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지혜를 모아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이 감사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할 때, 두 분이야말로 감사의 귀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와가두구에 하나뿐인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음 행선지인 보보로 출발하였다. 보보는 이번 일정 중 와가두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약 330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리 나라 기준으로 하면 별로 먼 거리도 아니고 서너 시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 같은데 여기서는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도로도 그런 대로 괜찮고 차도 나쁘지 않은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는 잘 되지 않는다.
가는 길은 의외로 아름다웠다. 끝 없이 펼쳐진 초원에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들과 함께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이 몹시도 평화롭게 보였다. 군데군데 농사짓는 모습도 정겨웠다. 정지 작업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땅은 그 이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들어 보니 일년 중 지금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한다. 부르키나 파소는 비가 적어 평소 물이 부족하고 척박한 나라인데, 지금은 우기여서 물도 비교적 많고 풀도 자라는 시기라는 것이다. 더울 때는 40도를 웃도는 더위로 심신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는데, 그래도 우리가 있는 동안은 줄곧 30도 대의 시원한(?) 날씨를 유지했다.
길에서 보는 경치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과연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주거 환경은 열악했다. 흙벽돌로 벽을 쌓고 양철로 지붕을 한 후 문만 하나 내면 그게 집이었다. 흙으로 된 벽돌은 비에 젖다 보면 무너지게 되고, 그러면 보수를 하느니 새로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폐허처럼 무너져 내린 집들이 살고 있는 집보다 더 많아 보였다. 집이라고 해봐야 고작 서너 평 면적에 창문도 없고 바닥도 맨 땅 그대로가 대부분이었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은 그래도 우리 나라 60년 대나 70년 대 초반쯤 하고 비교를 할 만 했는데, 이곳은 그런 비교조차 하기가 힘들었다.
최선을 고민하는 일
우리를 실은 차는 7시 반이 넘어서야 보보에 도착했다. 어제 하루 종일 긴장 속에 강의를 한 것보다 오늘 이동한 것이 훨씬 더 피곤했다. 아마도 부르키나 파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날인 것 같다. 이러다가 몸살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5일 보보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부르키나 파소에서 가장 긴 숙면을 취한 것 같다. 어제의 피곤함은 말끔히 사라지고 기분이 상쾌했다. 보보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흙벽돌로 지은 집은 마찬가지였으나 집도 크고 마당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집들에 담장이 있어, 사람 사는 집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비포장이었지만 골목길까지 반듯하게 도로도 나있었다.

교육 전에 농장 네 곳을 방문했다. 이곳은 계사를 모두 집안 마당에 지은 것이 특징이었다. 가정마다 충분한 넓이의 마당을 가지고 있으니 굳이 밖에 멀리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집집마다 마당의 형태가 다르다 보니 계사의 구조도 조금씩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했다. 각각의 계사에 대해 몇 가지씩 조언을 한 후, 레오 때와 마찬가지로 한 자리에 모였다.
오늘은 어떻게 시작을 할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수정 국장이 한 마디 했다.
“레오 때와 똑 같이 시작해 주실래요? 좋던데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똑 같은 내용을 녹음기처럼 말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 듣는 사람은 처음이라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 자신이 식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새롭게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직접 요청을 받고 보니 재방송을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레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번에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보보 지역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료와 병아리였다. 특히 어떤 품종의 어떤 일령 병아리를 구입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현지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던 나는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의견을 제시했다. 닭의 품종은 크게 재래종과 개량종이 있으며 사업 초기에는 재래종이 무난하나 기반이 닦이고 시장이 커지면 개량종으로 가야 하며, 어린 일령의 병아리일수록 키우기는 어려우나 그 대신 잘 키우면 수익성은 더 좋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으며, 이다영 간사가 도표까지 제시하며 의견을 취합하려 해보았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
교육을 마친 우리는 보보 지역에 있는 사료공장과 대규모 양계장을 방문했다. 사료공장은 작고 허름하였다. 작은 분쇄기 하나와 믹서 하나가 시설의 전부였는데, 이 시설로 하루 10톤의 사료를 생산한다고 했다. 보 잘 것 없는 시설이지만, 가성비는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양계장으로 갔다. 사료공장 사장이 하는 양계장이었는데, 약 2만 수 규모였다. 시설은 평사로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산란율이 70 퍼센트라고 하니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네덜란드에서 일일령 병아리를 사와서 키운다고 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많은 닭들을 도태시키고, 급하게 네덜란드에서 병아리를 수입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예전부터 계속 그렇게 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병아리를 수입하여 키우기도 하지만 다른 농가에 병아리를 팔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병아리를 구입하려는 농가들에게 이곳을 이용하도록 연결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아리도 믿을 만하고 사료도 있으니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격도 나쁘지 않아서 장기적으로 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양계장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계사와 계사 사이에 있는 웅덩이들이었다. 이 웅덩이에 뱀장어를 키우면서 죽은 닭을 먹이로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뱀장어들이 자라면 그것들은 다시 닭 사료가 되었다. 일종의 순환 방식 축산인 셈이었다. 사장은 내가 수의사라고 하니까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조만간 케이지 사육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 의견을 물었다. 케이지 사육을 하게 되면 평사보다 닭을 많이 키울 수 있고 산란율도 더 올라 갈 수 있어 땅이 부족한 우리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산란계 농장이 케이지를 이용하고 있지만, 동물복지 차원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땅도 넓은데 왜 굳이 케이지 사육을 하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한국의 산란율은 얼마냐고 되물었다. 80 퍼센트 이상은 된다고 대답했더니, 그것이 바로 이유라고 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두번째 교육을 마치며...
이렇게 두 번째 교육까지 무사히 마치고 하루 일과를 끝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동행인 중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바쁜 일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갑자기 일을 그만 두고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머나 먼 이국에서 열악한 환경과 싸우면서 소위 열정 페이로 버텨오다 결국 포기하고 마는 청춘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이렇게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렵고도 뜻 있는 일을 하면서도 수 많은 번민과 갈등, 그리고 좌절의 쓰디쓴 맛을 보아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현주소를 새삼 확인하였다. 아무쪼록 그 청춘의 앞길에 더 이상 좌절이 없기를 바란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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